러시아인들의 주거 문화를 통해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 주거의 대표적인 아파트, 다차, 바냐(러시아식 사우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주거문화
러시아의 주거문화는 크게 도시와 농촌의 주거 문화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의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파트에 거주합니다. 도시마다 높은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19세기까지 러시아의 귀족들은 2층으로 된 석조건물에서, 서민들은 통나무로 만든 이즈바에서 살았습니다. 소련 시절에는 공동주택 개념이 생겨나면서 귀족들의 주택을 몰수하여 방을 한 가구에 하나씩 배정하여 여러 가구가 함께 살기도 했습니다. 이런 거주 형태를 ‘코무날카’라고 불렀습니다. 1950년대 이후에는 주택난 해소를 위해 ‘흐루쇼프카’라고 불리는 5층짜리 네모난 아파트들이 급하게 대거 건설되었습니다. 어느 도시를 가든 흔하게 볼 수 있는 이 아파트는 획일적인 형태로 낮은 천장에 시멘트로 지어져 인기가 없었다. 대체로 소련 시절에 지은 러시아 도시 서민 아파트는 공간이 좁은 편입니다.
개방 이후 도시의 러시아 주택은 다양하게 발전해오고 있습니다. 도시 외곽에 기존의 아파트와는 구별되는 호화로운 아파트와 단독 주택들이 생겨났고 아파트의 내부 구조 또한 개인의 취향과 부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구식 첨단 편의 시설을 갖춘 초고층 호화 아파트들과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고급 빌라형 거주 지역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골의 경우는 단독 주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집들이 서로 가까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골집은 러시아의 전통 가옥인 이즈바로 불리는 통나무 오두막집입니다.
다차
도시 외곽에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소규모 농지와 그에 딸린 주택을 ‘다차’라고 부릅니다. 다차를 보통 별장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휴식을 위한 별장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대도시에 사는 러시아인들은 주말이나 휴가 기간에 다차에 머물면서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채소와 농작물을 재배하여 가정에서 소비하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합니다.
다차는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가 공을 세운 귀족에게 시 외곽에 위치한 작은 사유지를 하사한 것에서 기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제정 러시아 기간 동안 귀족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귀족들이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제2의 생활공간으로 다차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다차는 소비에트 혁명 이후 정부에 몰수되었고, 당 지도자들이나 유명 예술가, 지식인들에게 선물의 형태로 주어졌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나무로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는 형태의 다차는 흐루쇼프 집권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소련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노력했던 흐루쇼프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외곽의 주택을 각 가정에 무상으로 분배하면서 도시민의 70%가 다차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다차는 러시아인들에게 농장 또는 노동 공간의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겨울을 나기 위해 저장할 채소를 가꾸는 식량 획득 공간으로서의 기능과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겸하는 중요한 복합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소련 시절 지어진 다차는 난방시설은 없고 전기와 공용 수도만 갖추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마저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지역이 허다했습니다. 그러나 소련 해체 후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접어들면서 다차의 소유 여부와 규모가 부의 등급을 나누는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다차는 2층의 조립식 통나무집으로 방을 두 개 정도 갖춘 형태가 기본입니다. 이것보다 조금 더 큰 것부터 아예 헛간을 갖춘 것까지 다차의 형태와 규모는 다양합니다. 간간이 멋진 건축물에 위성 안테나, 사격장, 수영장, 넓은 잔디밭까지 갖춘 초호화판 다차도 볼 수 있습니다. 부유층과 정부 고위층을 중심으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에 호화로운 빌라 형태의 다차도 생겨났습니다. 모든 러시아인들이 다차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부유하든 가난하든 일반적으로 러시아인들에게 다차는 곧 제2의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도시민들이 주말이면 어김없이 다차로 향하고 여름을 보내는 것이 러시아의 주거 및 여가 문화로 정착한 지 오래입니다.
바냐(러시아 사우나)
러시아인들은 춥고 긴 겨울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통나무로 지은 목욕탕인 바냐에서 목욕을 즐겼습니다. 바냐란 러시아식 사우나를 의미하는 것으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러시아인들의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페치카에서 나무를 때서 달구어진 돌들에 물을 끼얹어 뜨거운 증기를 피워 피로를 푼다. 보통 바냐는 단층에 방이 하나인 통나무로 만든 작은 오두막집으로 호숫가나 강가에 위치하거나 다차 주변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러시아 바냐는 핀란드 사우나와 비슷한데, 수증기로 내부가 가득 차면 빗자루 모양으로 엮은 나뭇가지로 몸을 구석구석 때립니다. 주로 자작나무를 사용하는데, 혈액순환과 노폐물 분출에 효과적입니다. 몸을 덥힌 후에는 바냐에서 나와 바로 강이나 바다에 뛰어들거나 눈 속을 구르면서 열기를 식힙니다. 도시의 바냐는 전기 페치를 이용하여 온도를 높이며 몸을 식히는 것은 내부에 있는 냉탕에 들어가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냉온욕을 반복하면 몸을 탄력 있게 하고 튼튼하게 단련시켜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대도시에는 공중 바냐도 있습니다. 도시에서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바냐는 우리나라의 대중목욕탕이나 찜질방처럼 탈의실과 샤워실, 한증막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탈의실 주변에 간단한 운동과 오락을 위한 휴식 시설과 맥주 바 등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바냐를 모두 마친 뒤에는 반드시 차나 주스, 광천수, 케피르 등을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러시아에서 바냐는 단순히 목욕만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피로를 풀고 활기찬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휴식의 공간입니다. 가족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과거 러시아 농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온 가족이 몸을 씻기 위해 바냐에 불을 넣었고, 가족들은 그날을 축제날처럼 손꼽아 기다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러시아인들은 정기적으로 바냐를 다니면서 피로를 풀곤 하는데, 심지어 교외에 집이나 다차를 짓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자신만의 바냐를 갖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인들은 바냐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